??? : 잘못된 선택을 해서... 누군가 오셀럼호에서 날 내던진 것 같은데.
??? : 다른 일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에게 자기소개를 한다.)
??? : 안녕.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넌 이름이 뭐야?
??? : 기억나지 않아.
-(그가 이어서 말할 때까지 기다린다.)
-(별명이 있는지 물어본다.)
??? : 부르기가 불편하다면, 청년 A 혹은 A 군이라고 불러줘.
- ............
-실은... 네가 좀 낯이 익어.
청년 A : 정말?
-하지만 기억과는 조금 달라.
-그냥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어.
청년 A : ............
청년 A : 지휘관이 기억하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청년 A : 모두가 경계해야 하는 캐릭터였나?
-난 그에 대해 잘 몰랐어.
-그를 본 적도 없었지.
-그를 과거의 영상으로만 봤을 뿐,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어.
-그와 내가 속해있는 소대가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때 난 부상을 입었거든.
인간 지휘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다소 무거운 말투로 변했다.
-그는 희생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청년 A : ............
-이름 말고, 기억나는 게 더 있어?
청년 : 응, 의료 상자를 봤을 때, 예전에 외과 교본 몇 권을 봤었던 것과 거점의 의사를 도와줬던 게 떠올랐어.
-네가 익숙한 것을 통해, 추억을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의식의 바다에 있는 기억 데이터는 완전하다고 할 수 있어.
청년 A : 응, 방금 미처 이름을 물어보지 못한 보조형 구조체도 그렇게 말했어.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서, 조정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은 하늘과 지면을 오가는데, 문제가 있어.
-며칠 기다리면, 돌아오는 수송기가 있을 거야.
-우리랑 같이 돌아갈래?
청년 A : 내가 지휘관 일행과 같이 돌아가도 될까? 난 아직 신분도...
청년은 이 말을 내뱉은 순가, 상대방도 같은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졌다는 걸 눈치챘다. 청년이 기억상실로 가장했다면, 홀로 "적군"의 본거지로 향해야 하는 일에 분명히 동요했을 것이었다.
이곳의 구조체가 청년을 구했지만, 그들의 말대로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청년은 자기 자신도 믿을 용기가 없었기에, 의심의 합리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제멋대로 자신을 정의의 진영에 넣는다면, 가면을 벗게 되는 순간이 왔을 때, 위장한 악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청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청년 A : 모르겠어. 생각할 시간을 줘.
-............
-그래.
-너와 함께 돌아갈 그날을 기대할게.
청년 A : 그래? 알겠어.
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노안 : ............
??? : 방금 그 총소리는... 이 녀석이 쏜 거야? 정말로 그 짓을 하다니.
??? : 오슬란이 말한 대로네. 살기 위해 자신의 스승님까지 죽이다니.
??? : 그를 데려가. 우리의 임무는 끝났어.
??? : 노안!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 : 노안이 우리를 배신했어! 저놈이야말로 열차에 매달아 궤도 위를 끌고 다녀야 할 놈이야!
노안 : 멈추세요! 더 이상 그를 때리지 마세요!
상층 초병 : 하? 이 자식이 감히 길 한가운데 서서 내 길을 막아? 이놈을 때리는 게 어때서?
노안 : 다리가 불편한 게 안 보이나요?!
상층 초병 :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초병은 별거 아니라는 듯, 옆에 있는 지팡이를 힐끗 봤다.
상층 초병 : 레이첼이 수송팀의 뒤를 봐준다고 해서, 상층 초병에게 대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초병은 자신의 신분을 강조하고는 힘없는 주위 사람들을 둘러봤다. 하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홧김에 두 아이를 "징벌"할 준비는 안 된 것 같았다.
노안 : 레이첼 대장님과는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곳에 있지도 않아요.
상층 초병 : 레이첼이 없으면, 아무도 널 보호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겠지?
초병이 거칠게 노안의 멱살을 잡으려 하자, 노안이 들고 있던 무기에서 화염이 분출했다. 그리고 총알이 상대방의 보호 마스크를 명중되면서, 위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
노안 : 죄송해요. 제 사격 솜씨가 별로인데. 방금은 초병님을 놀라게만 하려고 한 건데, 맞힐 줄은 몰랐어요.
상층 초병 : 이런 망할 괴물 같으니!
노안 : 또 맞아보실래요?!
소년은 낮은 목소리로 포효했다.
노안 : 제가 정상적인 실력을 발휘한다면, 그건 단순 협박이겠죠!
노안 : 하지만 실수로 방호구가 없는 곳을 맞춰버린다면요.
상층 초병 : 마쳤구나?! 감히 상층 초병에게 총을 쏴??
초병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을 멸시하는 아이에게 마지막 경고를 했다.
노안 : 초병님이 이미 다리를 다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건 "정상"이고, 범죄를 말리다 부주의로 상처를 입히는 건 "미치광이"라고 하는 거라면, 전 차라리 미치광이가 되겠어요!
소년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쌓인 억압이 날카롭고 연약한 창끝으로 변해서 초병의 오만한 눈을 찔렀다.
노안 : 어때요? 한번 맞아보실래요?
이건 용감하지만 무모한 것이었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행위라 하더라도, 이때 막아선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상층 초병 : 짐승 같은 놈!
초병은 화를 내며 침을 뱉었다. 그리고 죽여도 책임질 필요 없는 생명을 향해, 손에 쥔 무기를 들었다.
롤랑 : 신경 쓰지 마. 저 사람은 "그"에게 특별히 초대받은 게스트야. 지금 너희들의 처지보다는 훨씬 안전해.
롤랑 : 저기 봐. 벌써 깨어났잖아.
배신자 구조체 2 : 게스트?
다시 기억을 되찾았을 때, 몸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럼, 개조 수술이 끝난 후에 일인가?
아니. 그뿐만이 아닌 것 같아.
기체의 손상은 이 순간의 기억에 손실이 있다고 일깨워 주고 있었다.
레이첼 : 잘 잡아! 놓으면 안 돼!
레이첼 : 넌 계속 펠드를 찾으러 가고 싶어 했잖아? 단말기에 펠드의 자료가 있어. 네가 이곳에서 살아남고, 배후에 있는 사람에게 살해당하지 않아야 펠드를 찾으러 갈 수 있다고!
레이첼 : 수송 부대를 총지휘하는 대장으로서... 난 많은 잘못을 했고,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줬어.
레이첼 : 진심을 다한 사람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고, 판단 착오로 아사 같은 놈도 믿었지.
레이첼 : 아사는 부하들이 소대의 물건을 훔치는 묵인 했고, 난 다 알고 있었지만... 그걸 허락했어. 왜냐하면 아사는 그중의 절반을 내게 나누어줬거든, 그리고 난 그걸 이용해 무기를 교환했어.
노안 : 그럼, 밴크로프트 아저씨의 일은...
레이첼 : 맞아. 아사가 펠드에게 G54호 창고에 대한 소식을 알려줬고 그를 화물 상자에 숨어들게 꼬신 거야. 그러니 날 미워해도 돼.
레이첼 : 사격해, 날 죽이고, 넌 살아남아!
레이첼 : 네 생각대로 수송 부대를 재편성하고, 나랑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거라!
레이첼 : 어서. 오슬란의 부하들이 올라오려고 해!
노안 : 하지만 수송 부대에는 생존자가 거의 남지 않았어요, 대장님이 틀렸다고 해도, 제 선생님이잖아요! 어떻게 쏠 수 있겠어요?!
레이첼 : 그럼, 내 마지막 부탁이라고 생각해. 노안.
레이첼 : 난 네 어머니에게 속죄하고 싶었거든.
레이첼 : 내가 줄리를 해쳤어. 그러니까 줄리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널 살리는 거야.
레이첼은 자기 손으로 노안의 손을 덮었다. 노안이 온기를 잃은 레이첼의 손을 다시 잡으려 했지만, 레이첼 목적은 여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됐다.
노안 : 레이첼 대장님, 뭘 하시려는 거죠?!
레이첼 : 지금까지도 난 줄리에게 깊은...
끝없이 하얀 설원 속에 오직 노안만이 홀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노안 : ............
레이첼 : 난 네 어머니에게 속죄하고 싶었거든.
레이첼 : 네 생각대로 수송 부대를 재편성하고, 나랑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마!
추억의 끝에서 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의식이 설원에 녹아들어 공허해지기 전, 노안은 행복한 꿈을 꿨다.
꿈에서 죽은 건 눈 위에 누워 있는 자신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오셀럼 호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었다.
의식이 공백으로 된 후, 노안은 또 고통스러운 꿈을 꿨다.
이 꿈에서 노안은 고속으로 운항하던 오셀럼호에서 던져졌지만, 어느 구조체의 개입으로 목숨을 건졌다.
가슴에 난 총상은 친구가 선물한 반딧불이 로봇이 막아줘서, 치명상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노안은 이 차가운 땅에 엎드린 채, 심한 고통과 함께 살아남았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은 모두 한겨울 속에서 사라졌다.
후회하니?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가 다시 한번 추억을 뚫고 귓가에 울렸다.
만약 다시 선택하게 해 준다면, 그래도 그 "증거"를 건네줄 거야?
노안 : ............
왜 대답을 안 해? 설마 네 의식도 빈사 상태의 기억과 동화된 거야?
목소리는 슬퍼하며 탄식하고 있었다.
아, 맞다. 내가 09호 의료 구역을 떠나 널 찾으러 갔을 때, 승격자를 배척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좀 남겼어.
네 몸에 걸린 "마법"이 효력을 잃기 전에,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 네가 구하고 싶은 사람들을 구해.
승격 네트워크의 은혜를 제대로 이해한 다음, 다시 날 찾아.
자신을 비웃는 듯한 웃음과 함께, 노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노안 : 이번이 마지막 경고라고 했으니, 다음번엔 좀 정확히 조준해.
기억 속에서 잠들어 있던 후회들이 눈앞에 있는 "이상"의 범행과 함께 침전물이 되어, 미래로 향하는 길을 가득 메웠다.
이상을 포기한 영혼은 죽었다. 남은 건 몸이 소멸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악을 없애는 걸 사명으로 여기는 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노안 : 왜? 총 쏠 생각이 없는 건가?
-넌... 거점에 있었던 기억상실에 걸린 구조체?
노안 : 그래.
-의료 구역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노안 : 내게... 질문하는 거야?
-이곳에 다른 사람은 없어.
-단죄하더라도, 먼저 사실은 밝혀야지.
노안 : 내가 사실을 말할 거라고 믿는 건가?
-난 내 판단을 믿어.
-일단 얘기해, 믿을지 말지는 내가 판단해.
노안 : ............
-배신자와 승격자를 조사하는 게 우리가 맡은 주요 임무야.
-우린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구조 요청을 받았어.
-그리고 근처에서 승격자의 활동 신호가 감지됐지.
-09호 의료 구역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배신자가 승격자를 지원하고 있다고 알려줬어.
-혹시 널 말하는 건가?
노안 :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네.
-어쩌면?
청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까지 오면서 겪었던 이상을 앞에 있는 사람에게 들려줬다.
-승격자에게 개조됐었다고?
노안 : 응.
-그러니까 네가 원해서 개조한 건 아니네.
노안 : 하지만 난 이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노안 : 내 몸에 제어할 수 없는 이상이 계속 존재하는 한, 타인을 또 다치게 할 수도 있어.
노안 :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면 난...
-제어할 수 있다면?
노안 : 사실... 원래는 그 승격자를 찾아가, 어떻게 해야 이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어.
-그게 아니라, 나와 함께 공중 정원에 가자고 말하는 거야.
-공중 정원의 과학자들이 널 도와서 이런 이상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야.
노안 : 과학자라...
-무고한 자들을 해치는 행위를 여전히 증오한다면...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말고, 승격자를 따라가지도 마.
-너에겐 아직 선택의 기회가 있어.
노안 : 선택의 기회?
-나와 함께 공중 정원으로 가서, 살아남는 거야.
-아니면 승격자가 되기 전에 여기서 죽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지.
노안 : 그것도 "선택의 기회"라고 할 수 있을까?
-미안. 그런데 다른 선택은 없어.
-난 승격자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노안 : ............
노안 : 내가 당신을 따라 돌아가서 당신이나 당신의 동료를 다치게 하는 건 두렵지 않나?
-지금 중상을 입은 상태로 그럴 수 있겠어?
노안 : ............
-난 엘리트 소대의 실력을 믿어.
노안 : ............
-지금 넌 거의 움직일 수 없을 거 같은데.
노안 : 통찰력이 참 좋네.
노안 : 그럼, 질문 하나 해도 될까?
-말해봐.
노안 : 당신 말대로 공중 정원으로 갔다가, 그곳의 연구자들도 방법이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노안 : 그럼, 난 승격자가 될 기회를 놓치게 되고, 탤버트나 다른 "배신자"가 기대했던 것처럼, 퍼니싱을 제어하고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없게 될 텐데.
노안 : 마음속 "바른길"을 위해, 변화를 가져올 힘을 포기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당연히 옳은 선택이지.
-그건 변화를 만드는 힘이 아니라 나약함에 굴복하는 거야.
-연구자들이 당장 방법이 없다고 해서, 아무 연구 성과도 없는 건 아니잖아.
-이곳에서 희생된 전사들은 모두 지금의 가혹한 환경을 바꾸려 노력했던 사람들이야.
-이런 환경을 만든 건 퍼니싱과 승격자들이고.
-만약 네가 그 힘 때문에, 그들의 졸개가 되지 못해 후회를 느낀다면
-그건 희생한 전사들을 향한 배신이자 모독이야!
노안 : ............
-네 표정을 보니, 정작 이 답을 생각했을 것 같은데.
노안 : 응.
노안 : 하지만 이 답이 가져올 결과 때문에 막막했던 적이 있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도 막막하다고 느껴져.
설령 이 논리를 깨우쳤다 해도, 가슴에 쌓인 빙산같이 무거운 옛 꿈은 쉽게 녹을 수 없었다.
-넌 승격자들이 고수하고 있는 "선별"에 동의하니?
노안 : 물론 동의할 수 없지. 난 평범한 생명도 자신만의 힘이 있다고 생각해. 또 각자의 의지에 따라, 생존과 죽음의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
노안 : 그리고 생명체의 생존 자격은 타인이 규칙을 정해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고 믿어.
-그럼, 인간의 과학 기술 발전이 네가 기대하는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어줄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대도 말이야.
노안 : ............
-게다가 내 초대를 저버리기 싫다고 메모에 적었었잖아.
-이제 약속을 지킬 차례야.
노안 : 메모?
노안은 어렴풋이 출발 전 감사를 전하는 메모를 남겼던 게 기억났다.
노안은 메모의 끝에 이런 말을 적었다.
"난 당신의 초대를 저버리기 싫어. 기억을 되찾은 후, 당신과 날 믿어줬던 사람들에게 내 신분을 솔직하게 설명할게"
노안 :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거야?
-네가 망설이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난 네가 나하고 같이 가길 바라거든.
-난 승격자가 더 늘어나는 걸 바라지 않아.
이 대답을 들은 청년은 조용히 웃었다.
노안 : 좋아.
공중 정원으로 가는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걱정과 의혹이 많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않은 상황에서 노안은 영혼이 이끄는 길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노안 : 당신과 함께 공중 정원으로 갈게.
7년이란 시간은 한 사람의 흔적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고요한 황야의 나뭇가지에 천 조각이 걸려서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고, 천 조각에는 펠드의 스카프와 비슷한 무늬가 있었다.
노안 : ............
노안은 이곳에 남아있는 건 스카프뿐이고, 펠드는 어딘가에서 밝게 웃고 있을 거라고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 꿈은 이미 끝에 달했고, 노안은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노안 : 배꽃이라...
세상을 떠난 생명은 부패를 통해 새 생명을 얻고, 어떤 한이 있더라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넓은 세상에 되돌아간다.
노안 : 이 나무가 살아있는 건, 네 덕분인 건가?
노안 : 지금의 오셀럼호는 억압에서 벗어나고 있어...
노안 : 너에게도 좋은 소식일까?
노안은 고요한 땅에 질문을 던졌지만 땅은 묵묵부답이었다.
노안 : 난 지금... 널 찾은 걸까?
산들바람이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스치자, 꽃잎 몇 잎이 노안의 손으로 떨어졌다.
허황한 바람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노안은 배꽃의 꽃잎을 그의 대답으로 삼아 조심스럽게 손에 쥐었다.
노안 : 오랜만이야. 하지.
노안 : 난 드디어 현실을 마주하고, 너와 작별할 용기가 생겼어.
청년은 오랜만에 웃음을 지으며 하얀 꽃잎을 바라보며, 간신히 입꼬리를 올렸다.
노안 : 고마워... 정말 고마워.
마음속에 있던 한을 푸려는 듯, 청년은 이 한마디를 끊임없이 묵념했다.
펠드를 만나지 않았다면, 노안은 아직도 레이첼의 곁에서 자신을 마음속에 가둬둔 채, 살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주위의 냉담함을 미워하면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것이다.
펠드는 그런 노안에게 온화한 변화를 가져다줬다. 하지만 그 변화로 인해 펠드와 완전히 이별하게 됐다.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펠드의 몸은 흙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생명이 됐다.
하지만, 영혼은 여전히 오랜 친구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었다.
노안 : 네가 남겨준 추억과 반딧불이는 내가 긴 밤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지금까지도 날 인도해 주고 있어.
노안 : 죽음이 존재했던 의미를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는 걸 드디어 깨달았어.
노안 : 너희들은 다른 방식으로 이곳에 남아,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불, 설원을 녹이는 불, 미래를 향하는 열차 그리고 내가 아직 살아 있는 원인과 이유가 됐어.
노안 : 고마워. 하지.
노안은 다시 한번 황야와 배꽃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노안 : 그리고... 잘 가.
045호 보육 구역, 그레이 레이븐 소대 그리고 아직 혼수상태였던 지휘관까지. 난 그들을 만난 적이 있었어.
망각자들을 따라 다시 열차로 돌아왔을 때, 난 확실히 같은 선택을 했다.
그 소년 구조체는 날 알아보지 못했지만, 자밀라는 기억하고 있었어.
난 후회하지 않아.
이번 생에서 난 많은 생명의 시혜를 받았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의 미래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고 싶다.
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우리의 죽음과 부패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 밤을 밝히는 화염이 됐다.
반딧불처럼 약한 불빛일지라도, 희망의 도화선을 점화하기는 충분하다.
잠에서 답안을 찾은 청년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모든 기억이 그의 마음속으로 돌아왔다. 몸에 금이 가고, 속박되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지라도, 청년은 더 이상 막막해하지 않을 것이다.
노안 : 응, 모두 안녕, 잘 가.
노안 : 나에게 "안녕"이란 말은 더 이상 이별을 의미하지 않아. 당신들이 내 옆에 있었다는 증거니까.
노안 : 난 줄곧 과거의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고, 부족했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노안 : 내가 "성인"이 아니라서, 매사 아무런 집착 없이 다 내려놓을 순 없단 말이지.
노안 : 상처도 내 일부니까. 난 그 상처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
노안 : 여전히 바꿀 수 없는 일이 수두룩하고 이로 인해 아쉬움이 더 많아져도...
노안 : 다시 되돌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도, 통곡하는 것도, 자신을 미워하는 것도 다 괜찮으니까.
노안 : 내가 이 고통을 느낀다는 건 아직 신경 쓰는 일이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 굳이 다 내려놓지 않아도 되잖아?
반딧불이가 조용히 노안의 곁을 맴돌며, 희미한 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노안 : 고마워 그리고 안녕... 아니다, 당신들은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지.
모든 추억이 반딧불로 변해 어두운 길을 밝혀줬다.
미소를 지은 노안은 어린 시절의 노래를 부르며, 빛을 향해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고통과 기쁨이 공존하는 현실로 돌아섰다.
그 불빛의 끝에 선 노안은 등대의 꼭대기로부터 온 바닷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진정한 자유는 눈앞에 있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몸이 밀집된 공격을 막아내며, 튼튼한 방패가 돼주었다.
노안 : 혹사, 당신이 틀렸어.
노안 : 희망은 헛된 기대가 아닌, 우리가 수많은 희생과 고통을 겪고 내린 결론이라고!
혹사 : ...
혹사 : 이것이 네 선택이자 답인 거니?
노안 : 그래. 당신이 몇 번을 물어봐도, 난 선별이라는 걸 공감할 수 없고 당신 생각에 동의할 수도 없어.
노안 : 난 추방과 감옥이 가득한 심연에 머물고 싶지도 않고, 기쁨이 없는 미소도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눈가를 장식하는 가식적인 눈물을 불쌍히 여기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노안 : 난 절대로 내 소원을 포기하지 않아!
혹사 : 넌 승격자의 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네 과거의 동료처럼 죽게 될 뿐, 아무도 구할 수 없어.
노안 : 알고 있어. 하지만 평범한 인간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든.
혹사 : 공중 정원은 승격자와 깊게 관련된 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들은 널 잠재적인 위험 요인으로 여길 텐데.
노안 : 물론 알고 있어. 그래도 계속 잘못을 저지르는 것보다 차라리 의심받는 게 낫겠지.
혹사 : 그곳은 네가 기대하는 에덴 낙원이 아니야. "영웅"에 대한 네 로망은 이용당하고 버려질 뿐이야. 그리고 더 무거운 누명을 씌울지도 몰라.
노안 : 그것도 알고 있어.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말이지. 하지만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
수송 부대가 전투를 치르기 며칠 전, 벨라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세 가지 질문을 했다. 당시 노안은 안개와 압박 속에 시달리고 있어서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앞길이 가시가 가득 솟아난 묘지일지라도, 노안은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노안 : 내 소원과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끝이 없어 보이는 어둠 뒤에 있어.
노안 : 희망은 반드시 곤경 속에서 꿈을 이룰 거야!
노안 : 괜찮아.
-지금 침식도가 엄청 높아.
노안 : 알고 있어.
노안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이런 상황에서 휴면하는 건, 의식의 바다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어.
-가능한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해.
노안 : 네.
-기억은 되찾은 거야?
노안 : 응. 모든 기억이 돌아왔어.
-그럼, 네 이름을 알려줄 수 있니?
인간은 다시 한번 처음 만났을 때의 질문을 했다.
노안 : 이름...
노안은 오셀럼호에서 내던져진 뒤로, 본명을 숨기고 "슈렉"이라는 이름만 사용했다.
그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분쟁을 피하거나, 잡다한 소문들과 벗어날 수 없는 죄명을 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본명을 말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슈렉"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주위에 알려져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었다.
-왜 그래?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 거야?
노안 : 아니. 기억해.
"슈렉"이 의미하는 소원과 가려진 모습과는 달리, "노안"은 늘 상처와 이별의 추억으로 뒤덮여 있었다.
"노안"이라는 호칭은 고통과 문제를 의미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해받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배신과 죄명의 표식으로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그 호칭은 생존자들에게 절대로 자아를 떠나, 영혼을 버리는 선택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고통과 아쉬움으로 끊임없이 일깨워 주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가 왔다. 그리고 노안은 앞으로도 많은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
지금, 노안에게 두 가지 호칭 중에서 결심의 상징으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노안은 반드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노안 : 노안. 내 이름은 노안이야.
노안 : 잘 부탁해. 지휘관.
-잘 부탁해.